고지의무 위반과 상관없는 병이라면 — 보험금은 받아도 계약은 해지될 수 있다

보험에 가입할 때 알렸어야 할 병력을 알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전혀 다른 병으로 보험금을 청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알리지 않은 병과 상관없는 병이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생각입니다.

이번에 살펴볼 판결(대법원 2010. 7. 22. 선고 2010다25353)은 이 질문을 ‘보험금’과 ‘계약’ 두 갈래로 나눠 답했습니다. 인과관계가 없으면 그 사고의 보험금은 지급되지만, 보험회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 자체를 해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 개요 — 고혈압을 알리지 않았고, 백혈병이 생겼다

피보험자는 보험계약 체결 전 최근 5년 이내에 고혈압으로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험계약자(원고)와 피보험자는 보험청약서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기재했습니다. 이후 피보험자에게 백혈병이 발병했습니다.

보험회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했고, 보험계약자는 그 해지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10. 2. 12. 선고 2009나94744 판결)은 보험계약자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1. 고혈압 진단·투약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고지의무 위반인가
  2. 고지의무 위반(고혈압)과 보험사고(백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어도 보험회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가

고혈압 진단·투약 사실은 왜 ‘중요한 사항’이 되었나요?

원심과 대법원은 고혈압 진단·투약 여부가 고지의무의 대상인 ‘중요한 사항’이라고 봤습니다. 보험회사가 보험사고 발생 가능성을 측정해 계약 체결 여부, 보험료, 면책조항 부가 같은 계약 내용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사항이고, 보험회사가 청약서에서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상법 제651조의2는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청약서로 질문한 사항은 일단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원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인과관계가 없어도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나요?

대법원은 해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묻지 않고, 보험회사는 상법 제651조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보험금은 별개라고 했습니다. 보험사고가 생긴 뒤에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한 경우, 보험금 지급책임은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에 따라 달라지고, 그 범위에서 계약해지의 효력이 제한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근거 조문 인과관계가 없을 때
계약 해지 상법 제651조 해지할 수 있음
이미 발생한 사고의 보험금 상법 제655조 단서 지급책임 있음

대법원이 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제651조는 인과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고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에 관한 일반 규정인 제651조에는 인과관계 요건이 없습니다.
  • 제655조 단서는 보험금에 관한 규정이다. 제655조는 계약을 해지했을 때의 보험금 청구에 관한 조문이므로, 본문뿐 아니라 단서도 보험금청구권이 있는지에 관한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 고지의무 위반은 계약 당시에, 인과관계는 사고 때 정해진다. 고지의무 위반 요건은 계약 당시 불고지·부실고지로 이미 충족되고, 인과관계는 보험사고가 생겼을 때 비로소 결정됩니다.
  • 해지를 막으면 불합리한 결과가 생긴다.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해지를 허용하지 않으면, 사고 전에는 해지할 수 있던 계약을 사고 후에는 해지할 수 없게 되고, 보험회사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한 계속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습니다.
  • 보험계약의 선의성과 단체성에 부합한다.

예전 판례와는 무엇이 달랐나요?

보험계약자는 상고이유에서 대법원 1994. 2. 25. 선고 93다52082 판결과 대법원 2001. 1. 5. 선고 2000다40353 판결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두 판결의 판시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93다52082: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 증명되면 보험자는 상법 제655조 단서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없지만,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의 입증책임은 보험계약자에게 있다.
  • 2000다40353: 보험계약자가 중요한 사항을 불고지·부실고지했더라도 보험사고 발생이 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증명된 경우, 보험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이 두 판결이 보험사고로 인한 보험금청구권이 있는지를 다툰 사건으로서, 계약해지의 효력을 다투는 이 사건과는 사안이 달라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문언만 보면 예전 판결들은 “인과관계가 없으면 해지할 수 없다”고 표현했지만, 이번 판결은 보험금 지급책임과 계약해지를 나눠 판단한 것입니다.

조문도 이후 정비됐습니다. 판결 당시 제655조 단서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로 끝났습니다. 2014. 3. 11. 전문개정된 현행 조문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이 증명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정하고 있어, 단서가 보험금 지급책임에 관한 내용임이 조문에 직접 드러납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보험금’과 ‘계약’은 따로 봐야 한다

필자가 이 판결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해지 통지를 받았을 때 두 가지를 나눠서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는 이미 생긴 사고의 보험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의 보장입니다.

이미 생긴 사고의 보험금은 고지의무 위반 사실과 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이 증명되면 지급책임이 남습니다. 다만 93다52082 판결에 따르면 그 증명책임은 보험계약자 쪽에 있습니다. 알리지 않은 병력과 청구한 질병이 의학적으로 무관하다는 점을 진료기록과 의학적 소견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의 보장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인과관계가 없어도 계약은 해지될 수 있으므로, 이번 보험금을 받더라도 그 계약으로 받을 수 있었던 이후의 보장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상관없는 병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절반만 맞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법리로만 보면 대법원의 결론은 조문 구조와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보험계약자 입장에서는 오래 유지해 온 계약도 사고와 무관한 고지 누락 하나로 해지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법이 정리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청약서의 질문 하나하나가 계약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입 단계에서 충분히 강조되어야 합니다.

해지 자체를 다툴 여지도 있습니다. 상법 제651조에 따라 보험자는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만 해지할 수 있고, 보험자가 계약 당시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에는 해지할 수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고지하지 않은 병과 상관없는 병으로 청구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나요?
상법 제655조 단서에 따라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보험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이 증명되면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만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의 증명책임은 보험계약자 쪽에 있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93다52082)입니다.

Q. 보험금을 받았는데 계약은 왜 해지되나요?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계약해지(상법 제651조)는 인과관계를 묻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2010다25353). 그래서 인과관계가 없는 사고의 보험금은 지급되더라도, 보험회사는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 자체를 해지할 수 있습니다.

Q. 보험회사는 언제까지 고지의무 위반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나요?
상법 제651조에 따라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에 해지할 수 있습니다. 보험회사가 계약 당시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때에는 해지할 수 없습니다.

Q. 청약서에 질문된 병력은 모두 중요한 사항인가요?
상법 제651조의2는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을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청약서로 질문한 고혈압 진단·투약 여부가 중요한 사항으로 인정됐습니다.

확인/체크리스트 (실용적 행동 지침)

  1. 해지 통지를 받았다면 ‘이미 청구한 보험금’과 ‘계약 유지’ 문제를 나눠서 확인합니다.
  2. 알리지 않은 병력과 청구한 질병·사고 사이에 의학적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진료기록과 의사 소견으로 정리합니다.
  3. 보험회사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안 날로부터 1월, 계약 체결일로부터 3년이 지났는지 확인합니다.
  4. 가입 당시 설계사나 보험회사가 해당 병력을 알고 있었는지(보험자의 악의·중과실) 확인할 자료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5. 청약서의 질문 문구와 내가 표시한 답변을 사본으로 받아 그대로 대조합니다.

이 글은 고지의무 · 인과관계 · 계약해지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칼럼은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강만하
법률사무소 청담 사무국장 · 17년간 교통사고·산재사고 보상, 송무, 보험금 분쟁 해결 업무 담당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