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장해율은 어떻게 인정받아 왔을까 — 판례로 보는 15년의 변화

교통사고나 부상 이후 손이나 발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계속되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병은 진단부터 쉽지 않고, 어렵게 진단을 받아도 “장해율이 몇 퍼센트냐”를 두고 보험사와 다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진단명을 받은 환자들인데도 소송마다, 감정인마다 인정되는 장해율이 크게 갈리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왜 유독 CRPS에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지금까지 법원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왔는지, 판례의 흐름을 따라가며 정리해봤습니다.

CRPS는 왜 유독 장해율 분쟁이 잦을까

CRPS는 염좌나 골절 같은 비교적 가벼운 손상 이후에도 발생할 수 있고, 증상의 심각도가 애초 손상 정도와는 무관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진단도 영상검사 같은 객관적 소견보다는 자발통, 이질통, 피부색·온도 변화 같은 임상 증상과 징후의 조합에 크게 의존합니다. 옛 진단기준은 민감도는 높았지만 특이도가 낮아 다른 신경통증 질환이 CRPS로 잘못 진단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국제통증학회의 개정된 진단기준으로 훨씬 엄격해졌지만, 여전히 “이 환자가 정말 CRPS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소송의 첫 관문입니다.

문제는 진단을 통과한 다음입니다. 후유장해 평가에 오래 쓰여온 맥브라이드표에는 CRPS나 이와 비슷한 통증장해를 판단할 별도 항목이 없습니다. 맥브라이드표에 아예 항목이 없는 장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흉터 같은 추상장애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의마다 어느 항목을 얼마나 유추적용하느냐에 따라 장해율이 크게 달라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병인데 어떤 사건에서는 장해율이 30%대로, 어떤 사건에서는 그 절반 수준으로 나오는 식입니다.

2012년 대법원 — 맥브라이드표만으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첫 대법원 판례가 2012년에 나왔습니다. 교통사고로 CRPS 장해가 발생한 사건에서, 원심은 신체감정 결과가 맥브라이드표를 유추적용해 산정한 노동능력상실률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습니다. CRPS나 이와 유사한 통증장해에 대해 별도 기준을 제시하는 내용이 전혀 없는 맥브라이드표를,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로 유추적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현저히 달라지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맥브라이드표와 AMA 장해평가 방식이 애초에 어떤 구조적 차이를 갖고 있는지는 다른 칼럼에서 따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이 판결은 지금까지도 쓰이는 원칙 하나를 함께 세웠습니다. 노동능력상실률은 단순한 의학적 신체기능장애율이 아니라, 피해자의 나이, 종전 직업의 성질과 경력, 신체기능장애 정도, 다른 직종으로 옮길 가능성, 그 밖의 사회적·경제적 조건까지 모두 참작해 경험칙에 따라 정하는 수익상실률이라는 겁니다. 의사가 매긴 신체기능장애율을 법원이 그대로 베껴 쓰는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하급심의 실제 적용 — 왜 AMA 6판을 택했나

대법원이 큰 원칙을 세운 뒤, 하급심에서는 실제로 어떤 기준을 쓸지가 다시 문제 됐습니다. 2017년 대전지방법원 판결이 이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맥브라이드표를 준용한 신체감정 결과를 근거로 33%, 많게는 50%의 노동능력상실률을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앞선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신 AMA 장애평가기준 6판에 따른 15%를 채택했습니다. 그 이유로 법원이 든 것은 당시 의학계가 CRPS를 판정할 때 국제통증학회의 수정 진단기준과 AMA 6판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CRPS라는 병 자체가 비교적 경미한 외상으로도 발생할 수 있고 결과는 중대하다는 특성을 고려해, 가해자 측의 책임은 70%로 제한했습니다.

이 판결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법원이 “어느 표가 더 유리한가”가 아니라 “지금 의학계가 실제로 쓰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장해율 산정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장해율 판단이 법률 문제이면서 동시에 의학의 최신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문제라는 걸 보여줍니다.

2019년 대법원 — 진단 기준과 장해율 기준은 같아야 한다

가장 정교한 판례는 2019년에 나왔습니다. 이 사건 원심은 CRPS가 실제로 발생했는지를 판단할 때는 비교적 완화된 기준(수정된 국제통증학회 임상용 진단기준 또는 AMA 6판)을 적용했으면서, 정작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할 때는 훨씬 엄격한 AMA 5판(11개 징후 중 8개 이상을 충족해야 하는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불일치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AMA 5판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원고는 애초에 진단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셈이 되는데, 진단은 완화된 기준으로 인정해놓고 장해율은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깎아내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단 여부와 장해율 산정에는 원칙적으로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하고, 만약 완화된 기준으로 진단을 인정했다면 장해율도 그에 상응하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이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같은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왕증(사고 이전부터 있던 지병) 처리 방식의 오류도 함께 지적했습니다. 원심은 기왕증이 노동능력상실률에 기여한 정도만 반영하고, 치료비 항목에는 별도로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책임 제한 단계에서 기왕증을 참작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왕증이 노동능력상실률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치료비에 대해서도 같은 기여도를 심리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손해 항목마다 기왕증을 다르게 취급하면 결국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CRPS 사건을 검토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신체감정 결과에 어떤 진단기준과 어떤 장해평가표가 각각 적용됐는지, 그리고 그 두 기준이 서로 앞뒤가 맞는지입니다. 감정 결과라는 게 한 장의 숫자로만 보이지만, 그 뒤에는 이렇게 여러 겹의 기준 선택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아 있는 간극 — 행정 장애등급은 다른 이야기

법원이 이렇게 정교한 기준을 세워왔지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행정적 장애평가는 아직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2021년 개정된 국내 장애평가기준은 국제통증학회 진단기준 충족, 발병 후 2년 이상의 치료 경과, 그리고 골스캔이나 방사선 검사로 확인되는 근위축·관절구축 같은 객관적 소견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은 기본적으로 관절가동범위 제한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는 구조입니다. 최근 대한통증학회지에 실린 한 논문은 이 지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CRPS의 가장 본질적인 증상은 통증 그 자체인데, 정작 장애평가 기준에는 통증으로 인한 기능 제한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 결과 실제로는 일상생활이 크게 제한된 환자도 행정적으로는 경증 등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이 간극은 CRPS로 보상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과, 손해배상 소송이나 보험금 청구에서 인정되는 장해율은 서로 다른 잣대로 판단되는 별개의 체계입니다. 행정적으로 낮은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소송이나 보험금 청구에서도 낮은 장해율이 나온다고 단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법원이 오랫동안 공들여 세워온 기준(진단과 장해율 기준의 일치, 경험칙에 따른 종합 판단)을 행정 시스템이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병을 둘러싼 보상 체계가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확인/체크리스트

  1. 신체감정 결과에 CRPS 진단과 장해율 산정 각각에 어떤 기준(국제통증학회 진단기준, AMA 몇 판)이 적용됐는지 확인합니다. 두 기준이 서로 다르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2. 맥브라이드표만을 유추적용해 산정된 장해율이라면, 그 자체로 합리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합니다.
  3.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이 낮게 나왔다고 해서 소송이나 보험금 청구에서의 장해율도 자동으로 낮게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판단 체계라는 점을 알아둡니다.
  4. 기왕증이 있다면 일실수입뿐 아니라 치료비 등 다른 손해 항목에도 그 기여도가 일관되게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5. 신체감정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적용된 기준의 타당성부터 전문가와 함께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은 복합부위통증증후군 · 노동능력상실률 · 맥브라이드 · 후유장해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