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을 요구받은 쪽이 아니라 보험사가 먼저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상책임이 없다는 걸 확인해달라”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인데, 앞서 다룬 조기축구 판례 두 건이 기대고 있는 법리(“사회적 상당성”)가 처음 이 틀로 정리된 사건이 바로 이 판결입니다. 종목은 축구가 아니라 농구입니다.
사건 개요 — 반코트 농구 경기 중 벌어진 충돌
2009년 8월,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을 포함한 다섯 명이 청주교육대학교 야외 농구장에서 반코트만 사용해 야간 친선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쪽(피고 1)이 리바운드를 하기 위해 점프해 공을 잡고 내려오던 중, 바로 뒤에서 리바운드를 노리고 서 있던 상대(피고 2)의 입 부위를 오른쪽 어깨로 충격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피고 2는 앞니 두 개가 부러지고 좌우 이빨 두 개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보험사가 먼저 소송을 걸어온 이유 — 채무부존재확인이란
이 사건에서 소송을 먼저 낸 쪽은 다친 사람이 아니라 가해자 측의 배상책임을 담보하는 보험사(메리츠화재해상보험)였습니다. “이 사고에 대해 우리는 지급할 채무가 없다”는 것을 법원에서 확인받으려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입니다.
판결문상 반소가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볼 때, 이 사건도 피해자 측이 손해사정사나 대리인을 통해 이미 배상을 요구한 상태였고, 보험사가 책임 유무에 대해 이견이 있어 분쟁을 법적으로 확정 짓기 위해 이 절차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피해자인 피고 2는 반소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맞대응했습니다. 배상 여부를 두고 양측 입장이 갈릴 때, 보험사가 먼저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법원의 판단 — “사회적 상당성”이라는 기준
원심(대전고법 2011. 6. 23. 선고 (청주)2011나512, 529 판결)과 대법원의 결론은 같았습니다. 대법원은 상고를 모두 기각해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운동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에게는 경기규칙을 지키면서 다른 참가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안전배려의무가 있습니다. 다만 축구나 농구처럼 여러 선수가 신체접촉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가리는 종목은 애초에 부상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고, 참가자는 예상 가능한 범위의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참가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는 경기 종류와 위험성, 경기규칙 준수 여부와 위반 정도, 부상의 부위와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그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 적용하면서 법원은, 농구는 신체접촉과 충격이 많은 경기이고 특히 반코트만 쓰는 야간 경기라 부상 위험이 더 컸다는 점, 리바운드 중 신체접촉은 통상 예상 가능한 상황이라는 점, 피고 1이 경기규칙을 위반했다고 볼 사정이 없다는 점, 자신의 뒤에 있을지 모를 상대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착지 방향을 바꾸거나 몸을 움츠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농구 경기 성질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 부상의 부위와 정도도 농구 경기에서 통상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 1의 행위는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 안에 있어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만한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이 판례가 남긴 것 — 조기축구 사건의 뿌리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결과 자체보다 이후에 있습니다. 2019년 조기축구 동호회 경기 중 골키퍼가 사지마비에 이른 사건(대법원 2017다203596)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이 세운 “사회적 상당성” 판단 틀을 그대로 가져와 적용했습니다. 종목이 농구에서 축구로 바뀌고 부상의 정도가 훨씬 무거워졌는데도 판단 기준의 뼈대는 이 2011년 사건에서 나온 것입니다. 생활체육 중 사고를 둘러싼 배상책임 분쟁에서 이 사건이 사실상 원형 판례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이 판례가 소비자에게 의미하는 것
이 판례에서 실무적으로 유의할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법원이 실제로 따지는 기준은 부상의 크기가 아니라 행위입니다. 앞니가 부러지는 부상도, 사지마비라는 중한 결과도 이 기준 앞에서는 결과의 크기만으로 책임이 정해지지 않고, 그 순간 상대의 행동이 통상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났는지가 관건입니다.
둘째, 절차 대응입니다. 배상을 요구했는데 보험사가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으로 대응해오면, 이는 보험사가 책임 유무를 법원에서 확정 짓겠다는 의사표시이므로 방치하지 말고 반소나 답변서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 측이 반소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본소와 반소를 함께 심리해 결론을 냈습니다. 소송이 어느 쪽에서 시작됐는지와 무관하게, 법원이 보는 쟁점은 동일하게 “행위가 사회적 상당성의 범위를 벗어났는가”입니다.
확인/체크리스트
- 상대방 보험사로부터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장을 받았다면, 대응하지 않고 방치하지 말고 반드시 반소나 답변서로 대응합니다.
- 사고 당시 목격자 진술, 경기 영상 등 상대의 ‘행위 자체’를 입증할 자료를 최대한 확보합니다.
- 경기 종목의 성격(개인종목인지, 신체접촉이 허용되는 대항종목인지)에 따라 감수해야 할 위험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합니다.
- 상대방 배상책임 인정 여부와 별개로, 본인이 가입한 상해보험이나 실손보험으로 치료비를 우선 확인합니다.
-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 중이라면 과실상계 가능성까지 함께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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