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재해 유형은 추락사고입니다. 그런데 산재 처리가 끝났다고 사건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산재보험을 초과하는 손해를 보전받으려면 근재보험금이나 사용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해야 하고, 이 단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근로자 과실이 쟁점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 판결을 살펴보면 추락사고에서 인정되는 과실비율은 30%에서 70%까지 사건마다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왜 그런지, 법원은 무엇을 근거로 그 비율을 정하는지 실제 판례들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추락사고에서는 왜 근로자 과실이 유독 자주 문제될까요?
추락사고는 위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낙하물 사고와 성격이 다릅니다. 낙하물 사고는 근로자가 위험을 예견하거나 피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반면, 추락사고는 대부분 근로자 본인이 위험한 높이·위치·동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법원은 추락사고에서 “근로자에게 그 위험을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지가 있었는가”를 먼저 따지고, 그 여지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상당한 비율의 과실을 인정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법원은 근로자의 어떤 행동을 ‘과실’로 보나요?
막연히 “위험한 현장이니 조심했어야 한다”는 식으로 과실을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법원은 근로자가 그 순간 택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안전 행동을 특정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삼습니다. 실제 판결 몇 건을 비교해보면 이 기준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과실 30% —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21. 10. 13. 선고 2020가단201530 판결. 도장공이 8m 높이 천장 작업을 위해 4m 높이 작업대에 올랐다가, 작업대 발판에 있던 물기 때문에 미끄러져 바닥으로 추락한 사건입니다. 작업대에는 근로자의 추락을 방지할 안전난간 등 안전시설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사용자 측의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원고에게 “사용자측에 안전난간 설치 등을 요구하거나 작업 시작 전에 미리 작업대가 미끄러운지 여부를 확인하고 물기가 있다면 이를 제거하는 등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30%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과실 30% — 수원지방법원 2008. 7. 11. 선고 2008나6950 판결(확정). 파견 비숙련 근로자가 안전교육 없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어 상해를 입은 사건입니다. 법원은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 양쪽의 안전교육 미실시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원고에게 “비숙련 근로자로서 위와 같이 위험한 이 사건 작업을 하게 되었으면, 안전조치, 안전교육 등을 요구하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는 등 스스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여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 한 채 만연히 작업을 한 잘못”이 있다며 30%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과실 30% — 대구고등법원 2011. 6. 29. 선고 2010나9475 판결(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 판결로 그대로 확정). 사출기 안전장치가 고장 난 상태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다 손을 다친 사건입니다. 법원은 원고에게도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를 확인하고, 안전장치가 고장이라면 비상스위치를 눌러 사출기를 정지시킨 뒤 현장관리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과실비율을 30%로 판단했습니다.
과실 50% —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24. 11. 27. 선고 2022가단38365 판결. 사출기 목포장 작업을 마친 근로자가 3미터 높이 A형 사다리에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져 추락한 사건입니다. 사용자는 사다리 이용에 관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고 추락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았으며, 원고가 위험한 방법으로 사다리를 내려오는 것을 보고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원고에게 “올라가는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사다리를 내려오는 등 이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며 과실을 50%까지 인정했습니다. 위 세 판례와 달리 과실비율이 껑충 뛴 이유는, 법원이 “원고가 올라가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내려왔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사고”라는 점, 즉 근로자 스스로 알고 있던 더 안전한 방법을 두고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더 무겁게 봤기 때문입니다.
과실 70% — 대전고등법원(청주) 2023. 10. 18. 선고 2022나51806 판결. 비포장도로 정비공사 현장에서 지입차주가 덤프트럭으로 혼합골재를 운반하다가, 도로 옆 낭떠러지 쪽 지반이 무너지면서 차량과 함께 추락해 사망한 사건입니다. 도로에는 추락을 막을 안전펜스나 PE드럼 등 안전시설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법원은 망인의 책임을 70%로 봤습니다. 도로 폭이 5~6m나 되어 중앙으로만 운전했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점, 기상 상태나 시야에 문제가 없었던 점, 망인이 같은 구간을 사고 전 두 차례나 운행해 낭떠러지 위치를 알고 있었던 점, 그런데도 사고 지점 오른쪽으로 붙어 운전한 점을 근거로 “운전미숙과 안전운전의무 위반행위, 차량의 특성”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안전시설 부재라는 객관적 위험이 있어도, 피해자 본인의 구체적 행동이 사고의 지배적 원인으로 인정되면 과실비율이 크게 높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왜 어떤 사건은 30%, 어떤 사건은 70%까지 갈까요?
위 판례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규칙이 보입니다. 안전시설이 미비했던 상태에서 근로자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부작위형 과실(안전조치 미요구, 발판 미확인)은 대체로 30%대에 머뭅니다. 반면 근로자 스스로 더 안전한 방법을 알고 있었거나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위험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경우(사다리를 다른 방식으로 내려옴, 낭떠러지 위치를 알면서도 그쪽으로 붙어 운전)에는 50~70%까지 뛰어오릅니다. 즉 과실비율을 가르는 것은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 현장에서 났는가’가 아니라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더 안전한 대안이 있었고, 그것을 알고도 택하지 않았는가’입니다.
참고로 사업주의 안전배려의무(신의칙상 부수적 의무로서, 이를 위반한 실질적 사용자는 채무불이행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을 함께 부담한다는 법리는 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53086 판결, 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0다7301 판결 등에서 확립되어 있습니다)는 위 판례 모두에서 폭넓게 인정됩니다. 근로자 과실이 인정된다고 해서 사업주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해액을 나눠 부담하는 구조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통념적인 과실비율 20~40%는 항상 정당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과실상계 비율의 산정은 원칙적으로 사실심(1심·2심) 법원의 재량 사항입니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 판결은 원심이 인정한 30% 과실비율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과실상계 비율의 산정은 “사실심의 전권사항”이라는 법리(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9다38544 판결 등 참조)를 인용해 원심 판단이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즉 상급심은 원칙적으로 하급심이 정한 과실비율 자체를 다시 판단하지 않고, 그 산정이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에만 개입합니다.
이 지점이 실무적으로 중요합니다. 보험사가 관행적으로 20~40%대의 과실비율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적 근거를 갖췄다기보다는 협상의 출발점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심 재량 사항이라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사고조사 자료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얼마나 촘촘하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그 비율이 실제로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형사책임이 인정됐다고 민사상 과실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위에서 소개한 대전고등법원 2022나51806 판결의 이면에는 눈여겨볼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사건의 현장소장은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위반으로 별도 형사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 원을, 항소심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부분이 무죄로 판단되면서도 업무상과실치사죄는 유죄로 인정돼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고 그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즉 안전시설물을 설치하지 않은 현장소장의 형사책임은 별도로 확정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민사 손해배상 단계에서는 망인에게 70%라는 상당히 높은 과실이 인정됐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형사재판에서 사업주 측이 유죄를 받았다는 사실이 민사상 과실상계에서 근로자·피해자 측 과실을 자동으로 없애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 사건이 잘 보여줍니다. 형사책임은 사업주가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했는지를, 민사상 과실상계는 손해 발생·확대에 양쪽이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따지는 별개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확인/체크리스트
- 사고 당시 안전장치·안전난간·안전대 등 최소한의 안전 설비가 존재했는지, 아니면 애초에 없었는지 구분해서 확인합니다.
- 근로자에게 그 순간 택할 수 있었던 더 안전한 구체적 대안(안전조치 요구, 발판 확인, 정해진 방법 준수 등)이 실제로 있었는지 따져봅니다.
- 사업주 측 형사처벌 여부와 민사상 과실상계는 별개 판단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형사 결과만으로 손해배상 협상 결과를 예단하지 않습니다.
- 보험사가 제시한 과실비율이 사고조사 자료에 근거한 것인지, 관행적인 출발점에 불과한 것인지 구분합니다.
이 글은 과실상계 · 안전배려의무 · 추락사고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