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건설 현장에서 1층 구역을 맡아 작업하던 근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쪽 층에서 무언가 떨어지면서 어깨를 그대로 맞았고, 그 충격으로 상완신경총(팔로 가는 신경 다발이 모이는 부위) 손상을 입어 팔에 상당한 장해가 남았습니다. 산재 처리는 무리 없이 진행됐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가입되어 있던 근재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보험사가 근로자 과실을 걸고 나온 것입니다.
보험사는 왜 근로자 과실을 주장했을까
산재보험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관련성만 인정되면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정액으로 보상하는 사회보장제도입니다. 반면 근재보험은 산재보험을 초과하는 손해에 대해 사업주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하는 보험이라, 일반 손해배상 사건과 똑같이 과실상계 법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근로자 과실을 찾아내는 것이 사실상 정해진 수순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험사가 꺼낸 논리도 전형적이었습니다. “근로 현장에는 상시 위험이 존재하므로 근로자에게도 스스로 안전을 도모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리 자체가 근거 없는 억지는 아닙니다. 실제로 법원도 유사한 취지의 판단을 여러 차례 내린 바 있습니다. 대법원 2013. 11. 28. 선고 2011다60247 판결은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근로자 과실 30%를 상계했고, 수원지방법원 2008. 7. 11. 선고 2008나6950 판결(확정)도 “비숙련 근로자로서 안전조치·안전교육 등을 요구하고 조심스럽게 작업을 하는 등 스스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다며 과실 30%를 인정했습니다. 보험사가 통상 20~40%대의 과실비율을 관행적으로 들고 나오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사정이 달랐다
문제는 이 논리가 성립하려면, 근로자가 그 위험을 스스로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사고조사 결과를 확인해보니 이 현장은 애초에 안전상의 이유로 상부 층과 하부 층에서 동시에 작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사고 당일 주 작업 구역은 명백히 1층이었습니다. 근로자는 정해진 절차와 안전수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1층에서 작업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상부 층에서 누군가 규정을 어기고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다가 물건을 떨어뜨렸고, 그것이 하필 1층에서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던 근로자의 어깨를 덮친 것입니다.
이 사실관계를 그대로 놓고 보면, “근로자가 스스로 안전을 도모했어야 한다”는 논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근로자는 위쪽에서 낙하물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견할 이유도, 그것을 피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사고의 원인은 전적으로 안전관리규정을 어기고 상부 층에서 동시 작업을 진행한 시공사 측의 관리 소홀에 있었습니다.
30%에서 10%로, 그리고 결국 0%로
보험사는 처음에는 30%의 근로자 과실을 주장했습니다. 층간 동시작업 금지 규정과 사고 당시 작업 배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반박하자, 보험사는 과실비율을 낮추면서도 “그래도 최소 10%는 근로자 과실로 잡아야 한다”는 입장으로 물러섰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이렇게 보험사가 처음 내놓은 과실비율을 근거 없이 낮춰가는 모습 자체가 그 비율이 애초에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토보다는 관행적인 출발점에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근로자가 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배치된 위치에서 작업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점, 사고의 유일한 원인이 상부 층의 안전규정 위반에 있다는 점을 끝까지 밝혀 최종적으로는 과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근로자 과실 없이, 즉 무과실로 손해배상금을 산정해 근재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
실무적으로 보면, “근로 현장에는 상시 위험이 있으니 근로자도 조심했어야 한다”는 말은 어느 사고에나 갖다 붙일 수 있는 만능 논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논리가 실제로 성립하려면 근로자에게 그 위험을 예견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지가 있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처럼 근로자가 안전수칙에 따라 정해진 구역에서 정상적으로 작업하고 있었고, 사고 원인이 전적으로 상대방의 규정 위반에 있었다면, 통념적인 과실비율을 그대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보험사가 제시하는 첫 번째 과실비율은 협상의 출발점일 뿐, 사고조사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작업 배치도, 안전관리규정, 동시작업 금지 여부 같은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이 정도는 과실로 잡는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던 보험금의 상당 부분을 놓쳤을 것입니다. 내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시된 과실비율에 수긍하기 전에 실제 사고 경위부터 적극적으로 따져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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