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에서 “만성 열공성 뇌경색”이라는 소견을 받으면, 어쨌든 뇌경색은 뇌경색이니 가입해 둔 뇌졸중진단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판독지의 “만성”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보험사가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는 이전 글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만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왜, 어떤 근거로 지급거절의 무기가 되는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MRI는 어떻게 “급성”과 “만성”을 구별할까
뇌경색이 생기면 병원에서는 보통 두 가지 영상을 함께 봅니다. 하나는 확산강조영상(DWI)이고, 다른 하나는 FLAIR(또는 T2강조영상)입니다. 갓 생긴 급성 뇌경색은 DWI에서 밝게(고신호강도로) 나타나는데, 이 신호는 발병 후 대략 1~3주가 지나면 서서히 사라집니다. 반면 시간이 꽤 지난 만성 병변은 DWI 신호는 이미 사라지고, FLAIR에서만 낮은 신호강도로 남습니다. 방사선의학 논문에서도 급성기 병변은 FLAIR에서 뚜렷한 고신호강도로, 만성 병변은 그보다 낮은 신호강도로 구분된다고 설명합니다.
즉 “만성”이라는 판독 문구는 의사가 함부로 붙이는 말이 아니라, DWI·FLAIR 영상의 신호 차이를 근거로 내리는 나름의 객관적인 판단입니다. 문제는 이 의학적 구분이 그대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가르는 기준으로 쓰인다는 데 있습니다.
“만성”이라는 판독 문구가 어떻게 지급거절로 이어질까
뇌졸중진단비·뇌혈관질환진단비 특약은 보통 뇌경색증(I63)처럼 특정 질병코드를 보장 대상으로 열거해 둡니다. 그런데 판독 소견에 “만성”이라는 말이 붙으면, 보험사는 이를 “지금 새로 발생한 뇌경색이 아니라 예전에 생겼던 병변의 흔적”이라고 해석해, 진단코드를 I63이 아니라 I69(뇌혈관질환의 후유증)로 재분류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I69는 대개 진단비 특약의 보장 대상 코드 목록에 들어 있지 않거나, 별도의 후유장해 특약에서만 다뤄지기 때문에, 코드 하나가 바뀌는 순간 지급 여부 자체가 갈리게 됩니다.
실제로 보험 손해사정 실무에서는 이런 유형의 분쟁을 뇌경색 진단비 분쟁의 대표적인 한 갈래로 꼽습니다. 판독지에 적힌 “만성” 또는 “진구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환자 입장에서는 그저 병변이 언제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의학 용어일 뿐인데, 보험사에게는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근거로 쓰이는 셈입니다.
약관은 정말 “만성이면 안 된다”고 정하고 있을까
여기서 한 번 짚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뇌졸중 관련 특약의 표준약관 문구를 보면, “급성(急性)”이라는 단어 대신 “뇌혈관의 급격한 장애”라는 표현을 씁니다. “급격하다”는 것은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는지를 말하는 것이지, 그 병변이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보험사의 거절 논리는 이 둘을 사실상 같은 뜻으로 취급해, “만성이니까 급격하지 않다, 그러니 보장 대상이 아니다”는 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원은 이 지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2024년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항소심 재판부는 약관 자체에 뇌경색을 급성과 만성으로 나눈다는 내용이 없고, 질병분류 체계상으로도 열공성 뇌경색을 뇌경색증(I63)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약관에 없는 기준으로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약관에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면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작성자불이익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된 셈입니다. 앞서 다룬 열공성 뇌경색 칼럼에서 소개한 창원지방법원 사건들과는 다른 별개의 법원 판결인데, 결론의 방향은 같습니다 — 여러 법원에서 “약관에 없는 급성·만성 구분을 보험사가 임의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판독 문구 하나로 단정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
실무적으로 보면, “만성”은 해당 보험담보에서 보장하지 않는다는 보험사의 설명을 듣고 지레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설명은 약관상 지급 여부를 자동으로 결정짓는 확정적 기준이 아니라, 보험사가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실제로 진단서·의무기록에 담긴 증상, 발병 경위, 담당 의사의 소견까지 종합해서 다퉈볼 여지가 충분히 있는 영역입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부분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만성 병변이 발견됐다면 가입 전부터 있던 게 아니냐”는 식으로 고지의무 위반 문제까지 연결지어 주장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렇게 실제로 다퉈진 사례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문서로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둡니다. 또한 이 문제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받은 사례가 있는지도 찾아보았으나, 공개된 결정례를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법원 판결 몇 건으로 흐름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직 이 쟁점에 대한 확립된 기준이라고 말하기는 이릅니다.
확인·체크리스트
- 판독지에 “만성” 또는 “진구성”이라는 단어가 있어도, 그 자체가 지급거절의 정당한 근거인지는 별개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 보험사가 제시하는 진단코드(I63 vs I69)가 실제 진단서·의무기록과 일치하는지 확인합니다.
- 가입한 특약의 약관에 급성·만성을 구분하는 문구가 실제로 있는지 직접 확인합니다(대부분은 “급격한 장애”라는 표현만 있습니다).
- 거절 통보를 받았다면, 보험사 자문의의 소견뿐 아니라 담당 의사의 소견서를 함께 받아 비교해봅니다.
- 판단이 쉽지 않은 사안이므로, 전문가와 함께 판독 소견과 약관 문구를 대조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이 글은 열공성뇌경색 · 뇌혈관질환진단비 · 진단확정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