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증 관여도 산정, 객관적 기준이 있을까 — 손해배상금과 보험금 실무 비판

기왕증이란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질환이나 신체적 소인을 말합니다. 손해배상 실무와 보험금 분쟁 모두에서 기왕증이 있으면 배상액이나 보험금이 얼마나, 어떤 근거로 줄어드는지가 자주 쟁점이 됩니다. 그런데 두 영역은 공제의 법적 근거 자체가 다르고, 각 영역 안에서도 그 근거가 실제로 얼마나 견고한지는 따로 따져볼 문제입니다. 이 글은 손해배상금과 보험금 각각에서 기왕증이 어떤 논리로 적용되는지를 짚고, 그 논리와 실무 운용에 대한 비판적 지점들, 그리고 관여도 산정 자체에 객관적 기준이 있는지를 마지막에 정리합니다.

손해배상금에서의 기왕증 공제 — 근거와 한계

교통사고로 뇌출혈이 발생한 사건에서, 법원은 기왕증의 기여도를 90%, 사고의 기여도를 10%로 인정했습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100920 판결). 사고와 기왕증이 결합해 하나의 결과를 낳았다면 사고가 실제로 기여한 정도만큼만 배상액을 정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 부합한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같은 법리는 의료소송에도 적용됩니다. 척추 수술 중 신경 손상이 발생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의사 측 과실의 내용·정도, 환자의 체질과 기존 질환 상태 등을 참작해 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수술만으로도 이미 예정되어 있던 장해(요추유합술로 인한 20%의 노동능력상실)와 기왕증이 새로 생긴 장해에 기여한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는 법리까지 제시했습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2다303995 판결).

이 논리 자체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실제 그 비율이 정해지는 과정에는 짚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앞서 본 90%/10%는 대법원이 직접 세운 기준이 아닙니다. 사실심인 원심(항소심)이 인정한 수치를, 대법원이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며 재량 범위 내로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판결문에는 이 판단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구가 있습니다. 기왕증 기여도는 “반드시 의학적으로 정확히 판정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고”, 기왕증의 원인과 정도, 기왕증과 후유증의 상관관계, 피해자의 연령·직업·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밀한 의학적 계산이 아니라 사실심의 종합적 재량 판단이라는 뜻이고, 상고심에서 사실상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통사고 손해배상 실무를 다루는 한 변호사 글은 기왕증 기여도가 결국 법원의 자유심증에 의해 정해지고, 신체감정을 맡은 감정의가 구체적인 기여도 백분율을 명시하지 않아 다툼이 오히려 커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목지향, “기왕증 기여도와 기왕의 장해,” 법조신문, 2020). 의료과실 사건을 다룬 한 논문도 유사한 문제를 짚습니다. 법원이 환자의 기존 질환·체질적 소인을 이유로 배상책임을 제한할 때 과실상계 법리를 유추 적용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이유로 어떻게 제한되는 것인지에 관하여는 기준을 설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백경희, “환자의 소인으로 인한 의료인의 책임 제한에 관한 소고,” 강원법학, 2016). 결국 손해배상 영역의 기왕증 공제는 이론적으로는 정당화되지만, 그 비율을 정하는 절차 자체는 사실심 법원의 폭넓은 재량에 맡겨져 있고 상급심의 통제도 제한적입니다.

보험금에서의 기왕증 공제 — 근거와 한계

생명·상해보험 약관에도 후유장해와 관련한 기왕증 규정이 있습니다. 2005년 5월 1일 이전 약관에는 부위를 가리지 않는 일반 조항, 이른바 ‘다른 신체상해 또는 질병의 영향’ 조항만 있었습니다. “이미 존재한 신체장해 또는 질병의 영향으로… 상해가 중하게 된 경우 회사는 그 영향이 없었을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결정하여 지급한다”는 식으로, 기왕증 감액의 가능성 자체는 모든 부위에 열어두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계산할지는 정하지 않는 포괄 조항이었습니다.

2005년 5월 1일 이후 약관부터는 후유장해분류표의 척추(등뼈) 장해 항목에 “퇴행성 기왕증 병변과 사고가 그 증상을 악화시킨 부분만큼, 즉 이 사고와의 관여도를 산정하여 평가한다”는 조항이 별도로 신설됐습니다. 추간판탈출증(허리디스크) 후유장해보험금 청구가 급증한 데 따른 대응으로 보이며, 실무에서는 이 조항을 근거로 추간판탈출증의 외상기여도를 감안해 보험금을 삭감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같은 조항은 척추체 압박골절로 인한 후유장해에도 활용되는데, 골다공증이 있는 환자라면 이를 퇴행성 기왕증으로 보아 보험금 삭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보험약관 어디에도 기왕증의 기여도를 어떻게 판단할지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관여도를 산정하여 평가한다”는 문구는 관여도를 계산해야 한다는 지시일 뿐, 무엇을 근거로 그 관여도를 산출할지는 정하지 않습니다. 결국 실무에서는 보험사가 주장하는 기왕증 관여도에 따라 후유장해보험금이 삭감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방법론 공백이 실제로 문제된 사건이 있습니다. 화물차 주차 중 사고로 2m 아래로 떨어져 좌측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척추 압박골절 등을 입은 사안입니다(대법원 2005. 10. 27. 선고 2004다52033 판결). 이 사건에 적용된 약관은 2005년 5월 1일 이전에 출시된 것이어서, “이미 존재한 신체장해 또는 질병의 영향으로… 상해가 중하게 된 경우 그 영향이 없었던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결정하여 지급한다”는 조항만 있었습니다. 원심은 각 부위 후유장해지급률에서 기왕증 기여분을 먼저 공제한 뒤, 감액된 지급률의 합계가 지급요건(80% 이상)을 충족하는지를 심사해 68%로 미달한다고 보고 지급의무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상해보험은 사고와 후유장해 사이의 인과관계만 인정되면 약정에 따라 지급의무가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고, 기왕증 감액은 약관에 명시적 조항이 있을 때 지급액을 산정하는 단계에서만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의 지급률표대로 계산하면 합계가 95%로 지급요건을 충족하므로 지급의무는 이미 발생했고, 관여도 산정은 지급액 산정 단계에서 해당 기여분을 감안하면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심이 장해의 기왕증 기여도를 계산한 방식에는 필자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 피해자는 사고 전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그 직후 양안의 교정시력이 0.2~0.6 사이였으며, 이후 이 사건으로 좌안이 완전히 실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심은 기왕증 기여도를 평가함에 있어 손해배상의 노동능력상실률 산정에 쓰는 맥브라이드 장해평가방식을 대입하여, 사고 전 시력의 전신활동능력장애율(8%)이 완전 실명 시의 전신활동능력장애율(24%)의 1/3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보험약관상 완전 실명 지급률 60%에도 그대로 1/3을 곱해 지급률을 40%로 보았습니다. 필자는 이 기왕증 적용 방식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이 약관의 후유장해지급율표에는 ‘한눈의 교정시력이 0.6 이하로 된 때’ 지급률을 5%로 정한 항목이 이미 있습니다. ‘그 영향이 없었을 때에 상당하는 금액’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것은 외부의 노동능력상실 평가방식이 아니라, 이 약관 자체가 이미 갖고 있는 기준입니다. 사고 전 상태가 이미 약관상 5%짜리 장해였다면, 완전 실명 60%에서 공제할 몫도 5%여야 합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눈 장해는 60%가 아니라 55%로 인정되어야 하고, 신경계 장해 25%를 그대로 더하면 이미 80%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척추 장해 지급률 10%의 기왕증 관여도를 고려하지 않아도 고도후유장해 지급요건을 충족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사안은 고도후유장해보험금 전액을 지급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일부 지점에서 대법원의 판단은 필자의 문제의식과 방향이 같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손해배상의 범위를 산정할 때 사용하는 장해평가 방식”을 상해보험의 기왕증 기여도 감액에 그대로 채택한 것 자체가 “이 사건 약관 조항의 해석을 그르친” 잘못이라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재계산해야 하는지까지 확정하지는 않았으며, 지급액 산정 단계에서 기왕증에 대한 기여분을 감안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고도후유장해보험금 전액을 지급받아야 한다고 본 필자로서는 좀 아쉬운 판결이었다고 봅니다.

이 사건 하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왕증 조항의 실무 운용에 대한 비판은 그간에도 있었습니다. 자동차보험 실무를 분석한 한 연구는, 법원이 기왕증 관여도를 상당히 높게(50% 이상)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고, 감정을 담당한 병원이나 의사에 따라 관여도 인정 정도의 편차가 심하다고 지적하며 보험약관 내 “기왕증 적용기준표” 도입을 제안했습니다(박은경, “교통사고 환자의 기왕증과 보험자의 보상책임,” 법학연구 48집, 2012; “자동차보험 실무상 기왕증에 대한 보상,” 법이론실무연구 1권 1호, 2013). 10년도 더 지난 문제 제기지만, 아쉽게도 이후 실무에서 구체적인 판정 기준이 마련됐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기왕증 관여도 산정, 객관적 기준이 있을까

앞선 두 영역의 비판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기왕증의 관여도·기여도를 판정할 통일된 의학적·법적 기준이 현재 한국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한 조사관은 어떻게 기왕증을 확정하고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 의료계가 정립한 이론이나 학설이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법원이 개별 판결로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대한의학회가 주축이 되어 “한국형 기왕증 및 기여도 산정기준”을 수립할 것을 제안했습니다(의협신문, 2017). 그런데 이 제안 이후 실제로 그런 기준이 마련됐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앞서 본 박은경의 “기왕증 적용기준표” 제안 역시 마찬가지로, 이후 제도화됐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법조계, 학계, 국회가 각각 다른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지적해온 문제가 10년 가까이 실질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보여줍니다. 앞서 본 척추 관여도 조항이 좋은 예입니다. 조항 자체는 신설됐지만 “관여도를 산정하여 평가한다”는 문구에는 판단 기준이 없어, 결과적으로 보험사가 주장하는 관여도가 그대로 실무 기준이 되는 구조는 조항 신설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손해배상에서는 상급심의 통제가 사실상 어려운 사실심 재량으로, 보험금에서는 감정병원·감정의·자문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로 각각 이어집니다. 같은 정도의 기왕증, 같은 유형의 사고라도 어느 감정의가 감정을 맡고 어느 재판부가 사건을 심리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실무 체크포인트

  1. 손해배상 청구와 보험금 청구의 공제 근거는 다릅니다. 어느 쪽인지부터 확정한 뒤 논거를 구성합니다.
  2.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감정서에 기여도 산정의 구체적 근거가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근거 없이 수치만 있다면 감정촉탁 시 보완을 요구하거나 재감정을 검토합니다.
  3. 보험금 청구라면 사고 당시 적용되던 약관의 발행 시점부터 확인합니다. 척추 관여도 산정 조항은 2005년 5월 1일 이후 출시된 상해보험 약관부터 신설된 것이라, 그 이전 약관에는 척추도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계산 방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4. 관여도 산정 조항이 있는 부위라면 지급요건 판단이 아니라 지급액 산정 단계에서만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대법원 2004다52033 법리). 계산 방법이 명시되지 않은 부위라면, 외부의 손해배상용 평가방식이 아니라 해당 약관 자체의 장해지급률표를 기준으로 기왕증 상당분을 다시 산정할 수 있는지 검토합니다.
  5. 척추 관여도 조항이 적용된 경우에도, 보험사가 제시한 관여도 수치의 산출 근거(무엇을 기준으로 그 비율을 정했는지)를 요구합니다. 조항 자체에 판단 기준이 없으므로, 근거 없이 제시된 수치는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6. 보험사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기왕증 기여도가 높게 산정되어 지급이 축소된 경우, 자문 절차의 적정성(자문의의 직접 진료 여부, 판단 근거)을 다툴 여지가 있는지 검토합니다.
  7. 실손보험이라면 ‘감액’이 아니라 ‘면책기간’·’부담보’ 조항의 문제인지 구분하고, 해당 상품의 약관 원문을 직접 대조합니다.

이 글은 기왕증 · 기왕증기여도 · 노동능력상실률 · 후유장해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