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해진단서에 노동능력상실율 15%라고 적혀 있어도, 보험사가 “그 항목은 저희 평가표에 없습니다”라며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얼굴에 흉터가 남은 한 가입자가 겪은 일입니다. 자동차상해 특별약관에 가입돼 있었고 실제로 장해도 발생했는데, 정작 보험사가 쓰는 평가 기준표에는 이 장해를 담을 항목 자체가 없었습니다.
사고와 진단 — 안구함몰로 남은 흉터
교통사고로 안와(눈구멍) 내벽이 골절돼 재건수술을 받은 가입자는, 수술 후에도 안구가 정상 위치보다 가라앉는 안구함몰이 남았습니다. 외견상 뚜렷하게 드러나는 변형이었고, 병원에서는 이를 근거로 노동능력상실율 15%의 장해진단서를 발급했습니다. 가입자는 이 진단서를 근거로 자동차상해 특별약관의 후유장해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보험사의 논리 — “그 항목은 저희 표에 없습니다”
보험사는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근거는 약관에 명시된 장해평가 방법, 즉 맥브라이드식 평가방법이었습니다. 맥브라이드 방식은 19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노동능력상실 평가 기준으로, 신체 부위별 장해 항목과 직종 계수를 조합해 장해율을 산정합니다. 문제는 이 표에 ‘추상장애(외모의 흉터·변형)’라는 항목 자체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평가표에 없는 장해는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맥브라이드 방식은 신체 기능의 손상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준이어서, 외모의 변형처럼 기능 손상과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장해는 처음부터 항목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개인 상해보험에서 주로 쓰는 AMA 방식에는 추상장해 항목이 별도로 존재합니다. 같은 사고, 같은 흉터인데 어떤 평가 기준을 적용받느냐에 따라 인정 여부가 갈리는 셈입니다.
분쟁조정위원회는 왜 다르게 판단했을까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핵심 근거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대법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모에 남은 추상(흉터·변형)이 그 자체로 노동능력상실을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추상의 부위·정도와 피해자의 성별·나이 등을 함께 고려했을 때 장래의 취업이나 승진, 전직 가능성에 뚜렷한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노동능력상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해왔습니다(대법원 1991. 8. 27. 선고 90다9773 판결). 안구함몰처럼 얼굴에 남는 뚜렷한 변형은 이 기준에 해당할 여지가 컸습니다.
둘째,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은 후유장해를 등급별로 나누고 그에 따른 보험금 한도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법령 자체는 추상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장해 유형을 등급 체계 안에서 포섭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보험사가 내부적으로 쓰는 맥브라이드 평가표 하나가 그 항목을 빠뜨렸다고 해서 법령상 인정되는 장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셋째, 약관 해석의 원칙인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입니다. 평가표에 특정 장해 항목이 없다는 사실은 가입자의 잘못이 아니라 약관을 만든 보험사 쪽의 공백입니다. 이런 불명확함이나 흠결을 가입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원칙의 취지입니다. 결국 위원회는 제3의 전문 의료기관의 감정 결과를 기준으로 삼아, 보험사가 상실수익액을 지급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모든 흉터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 회복 가능성이라는 변수
이 법리는 이후 대법원 2011. 1. 13. 선고 2009다105062 판결에서도 거의 같은 문장으로 재확인됐습니다. “추상의 부위 및 정도, 피해자의 성별·나이 등과 관련하여 장래의 취직, 직종선택, 승진, 전직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현저한 경우에 한하여” 노동능력상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판례는 정작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고로 얼굴에 남은 흉터가 이후 두 차례의 반흔성형술과 레이저박피술을 거치면 희미한 흔적 정도로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그 수술비를 향후치료비로는 인정했지만, 흉터 자체에 대한 노동능력상실은 별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즉 추상장애는 “흉터가 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흉터가 얼마나 뚜렷하고 영구적인지, 수술 등으로 상당히 개선될 여지가 있는지까지 함께 따져보는 문제입니다. 안구함몰처럼 뼈와 조직 구조 자체가 변형돼 수술로도 완전한 원상회복이 어려운 경우와, 반흔처럼 성형·레이저 시술로 눈에 띄게 옅어질 수 있는 경우는 같은 ‘흉터’라도 법원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평가표의 공백은 가입자의 책임이 아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저희 평가표에는 없는 항목입니다”라는 답변을 자주 받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외모에 남는 흉터·변형 관련 장해입니다. 그런데 표에 없는 것과 장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평가표는 보험사가 편의상 정리해둔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가 모든 상해 유형을 빠짐없이 담고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히 맥브라이드 방식처럼 9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평가 기준을 지금도 그대로 쓰는 구조에서는, 설계 당시 고려되지 않았던 장해 유형이 계속 사각지대로 남게 됩니다. 교통사고는 특성상 얼굴·머리 부위 손상과 그로 인한 흉터가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데, 정작 그 사고에 적용되는 평가 기준표에는 관련 항목이 없다는 것은 구조적인 공백에 가깝습니다. 법원과 분쟁조정위원회가 반복적으로 같은 취지의 판단을 내려온 것도, 이 공백을 가입자에게 떠넘기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흉터라면 무조건 장해로 인정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흉터가 남았으니 당연히 장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법원은 그 흉터의 정도와 회복 가능성까지 함께 봅니다. 성형·레이저 시술로 상당히 개선될 수 있는 흉터라면, 노동능력상실을 다투기보다 향후 치료비 청구로 접근하는 편이 더 현실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확인/체크리스트
- 장해진단서상 장해율이 보험사가 쓰는 평가표의 ‘표준 항목’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절 통보를 받았다면, 그 자체가 최종 결론은 아닙니다.
- 외모에 남은 흉터·변형이 있다면 부위, 크기, 사진, 진료기록을 최대한 상세히 남겨둡니다. 추상장애는 시간이 지나며 흐려질 수 있어 초기 기록이 중요합니다.
- 보험사가 산정한 장해율에 이견이 있다면, 제3의 전문 의료기관에 재감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 흉터·변형이 수술이나 시술로 상당히 개선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개선 여지가 큰 경우 노동능력상실보다 향후치료비 청구가 더 현실적인 접근일 수 있습니다.
- 약관의 평가 기준에 공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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