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막하출혈 진단서에 코드가 두 개 붙어 있었다면? — 비외상성 확정으로 뇌혈관질환진단비를 받은 사례

치매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간 79세 남성 환자가 있었습니다. 두부 MRI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급성 경막하출혈이 함께 발견됐고, 출혈량이 상당해 응급으로 천두술과 혈종 배액술을 받은 뒤 경과를 지켜보던 상황이었습니다.

경막하출혈이라는 진단명을 본 의료진의 첫 반응은 “최근에 머리를 부딪힌 적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경막하출혈은 교통사고나 낙상처럼 외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질환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초진 문진 과정에서 두부 외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환자 본인과 보호자 모두 다친 적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럼에도 의료진은 보호자에게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혔지만 본인이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하며 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환자가 치매 정밀검사를 받으러 온 상황이었던 만큼,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 자체를 열어둔 것입니다.

초진 진단서에는 병명이 두 개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초진 단계에서 발급된 진단서를 보니, 병명란에는 “경막하출혈, 비외상성”과 함께 “외상성 경막하 출혈(의증)”이라는 병명이 나란히 적혀 있었고, 질병분류번호에도 비외상성 코드인 I62.0과 외상성 코드인 S06.50이 함께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외상 흔적도, 외상을 뒷받침하는 진술도 없었는데도 외상성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이중 기재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사실은 부딪혔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치매 진행 여부를 검사하러 온 고령 환자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정이고, 의료진 입장에서는 이런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두 병명을 함께 적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문제는 이 상태를 그대로 두고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왜 이 상태로 청구했다면 보험금을 받기 어려웠을까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외상으로 인한 두개내출혈을 S06 계열(손상·중독 챕터)로, 외상이 아닌 두개내출혈을 I62(뇌혈관질환 챕터의 I60-I69 범위)로 분류합니다. 뇌혈관질환진단비는 원칙적으로 I60-I69 코드에 해당하는 진단을 대상으로 하므로, 진단서에 S06.50이라는 외상성 코드가 함께 남아 있는 상태라면 보험사가 “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급을 미루거나 다투고 나설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외상이 없었다는 사실과, 서류상 외상성 코드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I62.0 단일 코드로 정리됐나

이 상태로 청구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주치의를 직접 만나 초진 문진 기록과 환부 관찰 소견, 보호자 진술을 근거로 외상성 경막하출혈(의증) 코드를 제외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기억을 못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응급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출혈을 일으킬 만한 충격이라면 두피 열상이나 반상출혈, 혹, 찰과상처럼 외부에 남는 흔적이 함께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환부를 직접 관찰한 소견에서도 그런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고, 보호자 진술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다친 적이 없다는 내용으로 일관됐습니다.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외상이 없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다는 취지로 이 점을 주치의에게 전달했고, 주치의도 이 소견에 동의해 최종 진단서에서는 외상성 코드가 빠지고 I62.0 비외상성 코드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이렇게 정리된 최종 진단서를 근거로 가입해둔 보험의 뇌혈관질환진단보험금을 청구했고, 문제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

실무적으로 보면, 이런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진단명이 처음 나오는 시점이 아니라, 그 진단명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부딪혔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한번 제기되면 스스로 반박하기 어려운 가정입니다. 초진 단계의 이중 코드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외상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건”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의료 현장에서는 안전을 기하기 위해 외상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은 채 진단명을 이중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통념적인 관행이 그대로 굳어지면, 실제로는 비외상성이 명백한 사안인데도 서류상 애매한 코드가 남아 정당하게 받을 수 있었던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처럼 초진 문진 내용과 환부 소견, 보호자 진술 같은 근거를 정리해 주치의에게 적극적으로 확인을 요청하는 절차가 없었다면, 진단서는 이중 코드 상태로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진단명이 확정되는 순간까지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 필요한 경우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글은 경막하출혈 · 뇌혈관질환진단비 · KCD코드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칼럼과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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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