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산재보험금, 손해배상금에서 전액 공제되는 게 맞을까?

산재를 당한 근로자나 그 유족 중에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금을 받은 뒤에도, 사업주나 사고에 책임 있는 제3자를 상대로 근재보험 등을 통해 추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어보신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산재보험금은 치료비나 유족급여처럼 정해진 항목만 보상할 뿐 위자료나 손해 전체를 채워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은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로 청구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게 맞습니다.

문제는 ‘추가로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는지’는 정작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금액은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를 손해액에서 어떤 순서로 공제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2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바로 이 계산 순서를 뒤집으면서, 근로자와 유족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의 크기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사건 개요 — 하도급 작업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지방자치단체의 도로개설공사에 따라 기존 전신주를 옮기는 작업이 진행되던 중, 전주(본주를 지지하는 지주) 철거 작업을 하던 한 통신설비업체 소속 근로자가 쓰러진 지주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근로자는 나흘 뒤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유족에게 요양급여·장의비와 함께 유족연금(일시금으로 약 2억 원)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공단은 이 사고에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고 본 시공업체들을 상대로, 자신이 지급한 보험급여만큼을 돌려달라는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심(2심)은 사고 발생에 재해근로자 본인의 과실도 있었다고 보아 시공업체들의 책임을 85%로 제한했습니다. 그리고 시공업체들이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액 중, 재해근로자를 직접 고용했던 사업주(산재보험 가입자이기도 합니다)의 과실 비율을 30%로 판단했습니다. 이 비율들을 가지고 공단이 얼마를 구상할 수 있는지 계산하는 과정에서, 대법원까지 가게 되는 쟁점이 발생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과실상계 후 공제’에서 ‘공제 후 과실상계’로

쟁점: 계산 순서가 왜 중요한가

재해근로자에게 본인 과실이 있는 사고에서, 산재보험금을 받은 근로자(유족)가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배상액을 계산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① 손해 전체 금액에 먼저 과실상계(본인 과실 비율만큼 배상액을 깎는 것)를 적용해 시공업체가 배상할 금액을 정한 다음, 거기서 보험급여 전액을 공제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② 손해액에서 보험급여와 같은 성질의 금액을 먼저 공제한 다음, 남은 금액에 과실상계를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계산 순서만 다를 뿐 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제 대상이 ‘보험급여 전액’인지 ‘보험급여 중 일부’인지가 달라지면서 최종 금액이 달라집니다.

과거 — 과실상계 후 공제, 공단이 보험급여 전액을 대위

이 판결 이전까지 대법원은 오랫동안 ①번 방식(‘과실상계 후 공제’)을 따라왔습니다(1989년, 1990년, 2015년 판결 등). 이 방식에서는 공단이 재해근로자를 대위해 제3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범위가 원칙적으로 ‘보험급여 전액’이었습니다. 재해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몫까지도, 결과적으로는 공단이 보험급여를 통해 회수하는 구조에 가까웠습니다.

현재 — 공제 후 과실상계, 공단은 ‘제3자 책임비율’ 만큼만 대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②번 방식(‘공제 후 과실상계’)으로 바꿨습니다.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부담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사회보장 차원에서 신속하게 보상하는 제도입니다.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과 달리, 근로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해서 보험급여가 깎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공단이 제3자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하면서 재해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회수해 간다면, 결과적으로 그 부분만큼은 근로자가 산재보험을 통한 보호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공단이 대위할 수 있는 범위는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보험급여’로 제한되고, 재해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보험급여 부분에 대해서는 공단이 대위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부분은 보험급여 지급 이후에도 여전히 손해를 전보받지 못한 몫이지만, 공단이 이를 종국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실제 계산으로 확인해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 원심(과거 방식 적용): 유족연금 전액(약 2억 원)에서 사업주의 과실비율(30%) 상당액만 공제 → 공단의 구상 가능 금액 90,406,702원
  • 대법원(새 방식 적용): 유족연금에서 먼저 재해근로자 본인의 과실비율(15%) 상당액을 공제한 다음, 남은 금액에서 사업주의 과실비율 상당액을 다시 공제 → 공단의 구상 가능 금액 60,422,402원

두 금액의 차이는 약 3천만 원이며, 이는 정확히 유족연금 중 재해근로자 본인 과실비율(15%)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 부분(본인 과실비율 상당액)을 먼저 공제하지 않은 것이 법리 오해라고 보아, 소극적 손해(일실수입) 관련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공동불법행위에 사업주가 포함된 경우 — 순환 구상소송 방지

이 사건처럼 재해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 본인도 공동불법행위자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 공단은 그 사업주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아예 대위할 수 없습니다.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납부한 당사자인데, 공단이 그 사업주에게 다시 구상권을 행사하고, 사업주는 또 그만큼을 근로자에게 돌려받으려 하는 식의 ‘순환적인 구상소송’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 원칙 자체는 2002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미 확립되어 있던 법리입니다. 이번 판결은 여기에 더해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까지 결합해, 계산 순서를 사업주의 과실비율 공제 → 재해근로자 본인 과실비율 공제(또는 그 반대) 두 단계로 명확히 정리했습니다.

이 판결의 위치 — 건강보험에서 산재보험으로

이 법리 변경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대법원은 2021년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급여에 관해 먼저 ‘과실상계 후 공제’에서 ‘공제 후 과실상계’로 판례를 변경했고, 이 사건 판결(2022년)은 그 논리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도 동일하게 적용한 것입니다. 이후 대법원 2025. 6. 26. 선고 판결은 제3자 없이 사업주 본인의 불법행위만으로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그리고 근로자가 공단이 아니라 직접 사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같은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산재 관련 손해배상·구상 실무 전반의 기본 계산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재보험·직접 청구 금액은 실제로 얼마나 달라질까

여기서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를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때, ‘보험급여 전액’을 아무 손해 항목에서나 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공제는 항목별로 성질이 같은 손해액에만 대응해서 이루어집니다 — 요양급여는 치료비 성격의 손해에서, 휴업급여·장해급여는 해당 기간의 일실수입(휴업손해·후유장해 관련 소극적 손해)에서, 유족급여는 사망에 따른 일실수입 손해에서 공제되는 식입니다. 위자료처럼 보험급여가 애초에 커버하지 않는 손해 항목은 공제 대상이 아닙니다. 이 사건에서도 유족연금은 소극적 손해(일실수입)에서만 공제되었을 뿐, 치료비·장례비 관련 손해배상 부분(원심 판단 그대로 유지)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계산 순서가 실제로 근로자가 받는 금액을 얼마나 바꾸는지는, 이 판결 이후 나온 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3다297141 판결에서 훨씬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사건은 제3자 없이, 그라인더 작업 중 손목을 다친 근로자가 자신을 고용한 사업주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안입니다(사업주가 산재보험 가입자로서 근로자에게 산재보험금이 지급된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장해급여 54,202,500원을 지급했고, 법원은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의 책임을 70%로 인정했습니다. 휴업기간 이후의 일실수입 손해액 67,295,086원을 놓고, 계산 순서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갈렸습니다.

  • 원심(과거 방식, 과실상계 후 공제): 일실수입 67,295,086원에 과실비율 70%를 곱한 47,106,560원에서 장해급여 54,202,500원 전액을 공제 → 남는 금액이 없어 근로자의 일실수입 청구를 전부 기각(0원)
  • 대법원(새 방식, 공제 후 과실상계): 일실수입 67,295,086원에서 먼저 장해급여 54,202,500원을 공제한 13,092,586원에 과실비율 70%를 곱한 약 916만 원을 근로자가 배상받을 수 있다고 판단

같은 사고, 같은 보험급여, 같은 과실비율인데도 계산 순서 하나가 바뀌면서 근로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 ‘0원’에서 ‘약 916만 원’으로 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근로자가 사업주를 상대로 직접 청구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업주가 가입한 근재보험(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을 통한 청구 금액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구조입니다. 근재보험금은 정해진 자체 산식이 아니라 ‘사업주가 법률상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액’에서 산재보험금을 공제한 초과손해액을 보상하는 방식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그 책임액을 산정하는 계산 순서가 바뀌면 근재보험 지급액도 함께 달라집니다.

이 사건(2021다241618)에서도 방향은 같습니다. 공단이 시공업체들로부터 대위(회수)해 가는 금액이 줄어드는 만큼, 그 차액은 재해근로자(유족)가 시공업체들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는 몫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얼마가 늘어나는지는 사고마다 손해 항목의 구성, 보험급여의 종류, 과실비율이 모두 다르므로, 위 사건처럼 항목별로 손해액·보험급여·과실비율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정확한 금액이 나옵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이 판결이 근로자·유족에게 의미하는 것

실무적으로 이 판결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산재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사업주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근재보험 청구를 포함)이 자동으로 그만큼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번 판결로 근로자 본인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보험급여 부분은 공단의 구상권 행사 범위에서 빠지게 되었고, 그만큼 근로자(유족) 측이 직접 주장할 수 있는 손해배상의 여지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산재보험금을 받으면 항상 유리해진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계산 순서를 바로잡은 것이지, 손해배상의 총액 자체를 늘려준 것은 아닙니다. 사고마다 과실비율 구조와 손해 항목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금액에 미치는 영향은 사건별로 따져봐야 합니다.

또 하나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이 판결이 산재사고를 당한 근로자·유족뿐 아니라 사업주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 하도급 구조가 얽힌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원청, 발주자, 다른 협력업체 등 여러 주체의 과실이 함께 문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공단이 구상금을 청구해 올 때, 내 회사(사업주)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부당하게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볼 실익이 있습니다.

확인·체크리스트

  1. 산재사고에 원청, 발주자, 다른 시공업체 등 ‘제3자’의 과실이 함께 개입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2.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보험급여 항목(요양급여·휴업급여·장해급여·유족급여 등)이 손해배상 항목(치료비·일실수입·위자료 등) 중 어느 것과 대응하는지 정리합니다.
  3. 사업주의 근재보험이나 제3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공단으로부터 구상금을 청구받는 경우 계산이 ‘공제 후 과실상계’ 순서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봅니다. 계산 순서만 바뀌어도 청구·수령 금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4. 사고에 소속 사업주도 공동불법행위자로 포함되어 있다면, 공단이 사업주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구상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합니다.
  5. 계산 구조가 복잡한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금액 산정은 변호사나 손해사정 전문가와 함께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 글은 구상금 · 근재보험 · 공제후과실상계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칼럼은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