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금 받았으니 다 끝난 줄 알았는데 — 근로자재해보험(근재보험)이 따로 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다치거나, 작업 중 사고를 당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금(요양급여·휴업급여·장해급여)을 받고 나면, 대부분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치료비도 나왔고, 일 못한 기간 급여도 나왔고, 장해가 남았다면 장해급여까지 나왔으니까요.

그런데 회사에 따라 “근로자재해보험(근재보험)”이라는 걸 별도로 들어둔 곳이 있습니다. 산재보험과 이름이 비슷해서 같은 건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산재보험이 못 채워주는 부분 — 위자료, 실제 손해액과 정해진 급여액의 차액 — 을 이 보험이 메워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보험은 “청구해야” 나온다는 것이고, 청구하려면 산재보험과는 전혀 다른 조건(회사의 과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산재보험과 근재보험, 이름은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제도

산재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은 근로기준법상 사업주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사회보험입니다. 운영 주체는 근로복지공단이고, 회사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만 인정되면 정해진 기준에 따라 보험금이 나옵니다. 대신 지급 항목과 금액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정률·정액 지급),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가 상한이고, 위자료 같은 항목은 아예 없습니다.

근로자재해보험(근재보험, 정식 명칭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은 이와 다릅니다. 가입 의무가 없는 임의보험이고, 근로복지공단이 아니라 민간 손해보험사가 운영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근재보험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부담하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중에서 산재보험이 이미 보상한 부분을 초과하는 손해만 담보하는 구조입니다. 산재보험을 다 받은 다음, 그래도 남는 손해가 있을 때 그 차액을 메워주는 보험이라는 뜻입니다.

근재보험이 메워주는 것 — 위자료, 상실수익, 휴업급여 차액

실무적으로 근재보험 청구에서 다투는 항목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 위자료: 산재보험에는 없는 항목입니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은 민사상 손해배상에서만 인정됩니다.
  • 휴업급여 차액: 산재보험의 휴업급여는 평균임금의 70%가 상한인데, 민사상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100% 일실수입을 기준으로 산정합니다. 이 30%포인트 차이가 차액으로 청구 대상이 됩니다.
  • 상실수익액(일실수입): 노동능력상실률에 따라 앞으로 벌지 못하게 된 소득을 손해로 계산하는데, 산재 장해급여의 산정 방식과 민법상 손해배상 산정 방식이 달라서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성형비용 등 기타 손해: 흉터 제거 수술비처럼 산재보험 요양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도 청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청구 절차는 대체로 ①산재보험을 먼저 청구해 치료비·휴업급여·장해급여 등을 받고, ②그래도 남는 손해액(위자료·민법상 손해배상금·간병비 등)을 산정한 뒤, ③손해사정 보고서로 의학적·법률적 근거를 정리해서, ④근재보험사에 청구하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근재보험은 “책임보험”이다 — 회사의 과실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다는 뜻

여기서 근재보험과 산재보험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나옵니다. 산재보험은 회사 잘못이 없어도 나옵니다(무과실책임). 그런데 근재보험은 “사업주가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을 대신 보상하는 책임보험이기 때문에, 애초에 사업주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해야만 보험금이 나옵니다.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려면 사업주가 근로계약상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원칙적으로 근로자 쪽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안전장치가 없었는지, 작업환경 관리가 부실했는지, 사고 경위와 증거가 남아 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실제로 산재보험에서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는데도, 정작 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에서는 과실 입증이 부족해 책임이 부정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업무상 재해” 인정과 “회사의 민사상 책임” 인정은 법적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근재보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근로자(또는 유족)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회사가 먼저 “저희가 근재보험에 가입돼 있으니 청구하세요”라고 알려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산재보험만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고 생각하는 사이에, 실제로는 청구할 수 있었던 손해액의 상당 부분이 그대로 묻히는 셈입니다.

산재보험급여를 대신 갚아준 근재보험사, 근로복지공단에 돌려받을 수 있을까 — 대법원 2016다271455 판결

근재보험과 산재보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6다271455 판결).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 근로자가 공사현장 비계에서 추락해 요추 압박골절을 입었습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받았는데, 당시 “장해 없음” 소견이 나와 장해급여는 청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소송 과정의 신체감정에서 영구장해가 인정되면서 일실수입과 위자료를 합쳐 약 5,9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회사의 근재보험사는 이 확정판결에 따라 근로자에게 보험금 약 7,360만 원을 지급했는데, 이 중 약 1,445만 원은 사실 근로복지공단이 장해보상일시금으로 지급했어야 할 산재보험 몫이었습니다.

근재보험사는 “우리가 근로복지공단이 냈어야 할 돈까지 대신 냈으니 돌려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습니다. 대법원은 이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근거는 민법 제469조(제3자의 변제) 법리입니다. 이해관계 없는 제3자라도 다른 사람의 채무를 갚을 의사로 변제하고, 채권자도 그 사정을 알면서 받았다면 그 채무는 소멸하고, 제3자는 원래 채무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근재보험사와 근로자 양쪽이 “이 돈은 원래 산재보험이 줬어야 할 몫”이라는 사정을 알고 있었다면, 근로복지공단의 지급의무는 소멸하고, 근재보험사는 근로복지공단에 그 금액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판결은 근재보험이 원칙적으로 산재보상분을 초과하는 부분만 담보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면서도, 실무에서 산재와 근재의 지급 범위가 뒤섞이는 경우 사후에 정산할 수 있는 법리적 통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사건은 근로복지공단과 보험사 사이의 구상 문제이고, 근로자 입장에서 직접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 판결이 실무적으로 의미 있는 지점은, 산재보험과 근재보험의 지급 범위가 원칙과 다르게 겹치거나 뒤섞일 수 있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확인/체크리스트

  1. 재해를 입었다면 산재보험(요양급여·휴업급여·장해급여)부터 청구하되, 이것으로 손해가 다 채워진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2. 회사(또는 사업주)가 근로자재해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확인하세요. 회사가 먼저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회사에 통지하면서 근재보험 가입 여부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 확실합니다.
  3. 위자료, 휴업급여 차액(평균임금 70% 초과분), 상실수익액처럼 산재보험이 채워주지 않는 항목이 있는지 손해사정 관점에서 따져보세요.
  4. 근재보험은 책임보험이라 회사의 과실(안전배려의무 위반) 입증이 관건입니다. 사고 당시의 안전조치 여부, 작업환경, 사고 경위에 관한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두세요.
  5. 산재보험급여와 근재보험금이 같은 손해 항목을 중복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 손해사정 단계에서 반드시 구분해서 산정해야 합니다.

이 글은 근로자재해보험 · 근재보험 · 산재보험 · 안전배려의무 · 구상금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판례는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