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를 많이 냈다면, 그중 일부는 나중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돌려준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돌려받을 돈까지 실손보험금으로 먼저 받을 수 있을까요. 1심과 2심에서는 소비자가 이겼는데, 대법원에서 뒤집힌 사건이 있습니다. 청구 금액이 111만 원 남짓한 소액사건이었는데도 대법원까지 간 이유부터, 그 결론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 도수치료로 늘어난 입원비, 그리고 두 가지 거절
가입자는 2008년, 질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으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본인이 부담하는 입원실료·입원제비용·수술비 전액과 상급병실 차액의 일부를 보상하는 특약이 포함된 종합보험에 가입했습니다. 특약 약관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비용, 즉 요양급여 중 본인부담분과 비급여 부분을 보상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2021년 8월부터 10월까지, 가입자는 세 곳의 병원에 나눠 입원하며 도수치료 16회와 체외충격파치료 7회 등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보험사는 두 가지 이유로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는 도수치료 등 비용(562만 2천 원)이 약관상 실손의료비 지급대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민건강보험법상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는 금액(111만 552원)은 병원이나 건강보험공단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돈이므로 특약의 보상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단
가입자는 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 격인 창원지방법원은 가입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근거는 약관 해석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원칙이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특약에 관한 약관 내용이 명백하지 않거나 의심스러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보험자가 지출한 의료비가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했는지와 상관없이 의료비 전액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이 청구 금액 기준으로는 소액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소액사건은 원칙적으로 대법원 판례에 명백히 어긋난 판단을 했을 때만 상고할 수 있는데, 이 사건은 그 요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실제로 이 사건을 심리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같은 쟁점을 다루는 소액사건들이 하급심에 여럿 계속되어 있고 재판부마다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법령 해석에 관한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끝내버리면 비슷한 처지의 다른 가입자들에게 미치는 법적 안정성 문제가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외적으로 법령해석 통일을 위한 판단에 나선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 —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비용의 의미
대법원은 먼저 약관 해석의 원칙을 짚었습니다. 약관은 평균적인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기준으로 객관적이고 획일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그렇게 해석한 결과 조항이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고 각각의 해석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어 뜻이 명확하지 않을 때 비로소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원칙이 적용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객관적으로 해석했을 때 결론이 하나로 분명하게 정해진다면 고객에게 유리한 해석을 적용할 여지 자체가 없습니다.
이 사건 특약의 문언을 보면,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하여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보상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요양급여 중 피보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부분만 지급대상이고, 부담하지 않는 부분은 애초에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뜻이 문언 자체에서 드러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는 금액은 누가 부담하는 돈일까요.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법령의 연혁을 짚었습니다. 2004년 개정된 시행령에서 처음으로 “본인이 부담한 비용의 총액이 일정 금액을 초과하면 그 초과분을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다”는 본인부담금 상한제가 도입됐고, 이 제도는 2016년 법률 개정으로 국민건강보험법 조문에 정식으로 편입됐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하는 금액은 법적으로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돈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는 비용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대법원은 이 사건 특약이 실손의료보험, 즉 손해보험의 일종이라는 점도 짚었습니다. 손해보험은 실제로 발생한 재산상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원칙인데, 애초에 피보험자가 부담하지 않게 되는 돈이라면 그 부분에는 보상할 손해 자체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런 문언과 법령, 보험의 성질을 종합하면, 이 사건 특약은 피보험자가 요양급여 중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부분만 담보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본인부담상한액을 초과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환급받는 부분은 애초에 특약의 보상대상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약관이 여러 갈래로 해석될 여지가 없으므로,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111만 552원과 지연손해금)에 대한 원심 판결은 파기되어 창원지방법원으로 환송됐습니다.
다만 도수치료 등 비용(562만 2천 원) 부분은 성격이 다릅니다. 상고심은 상고이유서에 적힌 불복 사유의 범위 안에서만 심리하는데, 보험사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상고이유를 밝히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한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즉 대법원이 도수치료 비용의 실손보험 인정 여부를 실제로 판단한 것은 아니며, 이 부분은 가입자가 승소한 원심 판단이 절차적으로 그대로 유지된 것입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소액사건이라도 법리를 통일해야 하는 이유
실무적으로 보면, 이 판례를 상담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청구하려는 의료비가 본인부담상한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장기입원이나 도수치료처럼 의료비가 누적되는 치료를 받은 경우 본인부담상한액을 넘기기 쉬운데, 그 초과분은 법적으로 이미 내 돈이 아니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할 돈으로 성격이 바뀐다는 점을 놓치기 쉽습니다.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때 이 부분까지 함께 청구했다가 거절당하고 나서야 이 구조를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 이 판단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본인부담상한제의 사후환급은 병원에서 바로 정산되지 않고, 건강보험공단이 별도로 심사해 환급하는 절차를 거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돈을 돌려받기까지 시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기간 동안에는 이미 병원에 낸 돈이 묶여 있는 셈인데, 법리상으로는 “어차피 돌려받을 돈이니 실손보험이 줄 필요는 없다”고 정리된 것입니다. 법리적으로는 이중보상을 막는다는 점에서 타당하지만, 현금흐름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한계는 남습니다.
확인/체크리스트 (실용적 행동 지침)
- 장기입원이나 고액치료로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면, 본인이 부담한 금액의 총액이 국민건강보험법상 본인부담상한액(소득 분위에 따라 다름)을 넘었는지부터 확인합니다.
- 상한액을 초과한 금액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사후환급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실손보험금과는 별도로 공단에 환급 신청이 가능한지 확인합니다.
- 실손보험 약관에서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라는 문구를 발견하면, 법령상 부담 주체가 달라지는 부분(예: 본인부담상한제 초과분)은 보상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둡니다.
- 도수치료·체외충격파치료 등 실손보험 지급 여부가 별도로 다퉈지는 치료 항목은 이 판례와 무관하게(이 판결에서 실체적으로 판단되지 않았습니다) 약관상 인정 요건을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 글은 본인부담상한제 · 실손의료보험 · 약관해석원칙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칼럼은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