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레일 없는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면, 지자체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굽은 도로 옆에 낭떠러지가 있는데 가드레일이 없다면, 누구라도 그 자체를 위험하다고 느낄 겁니다. 실제로 그런 곳에서 사고가 나면 “관리하는 지자체 책임 아니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런데 이 판례를 보면, 법원이 실제로 인정하는 도로관리자의 책임 범위는 그 직관보다 훨씬 좁습니다. 1심에서는 지자체 책임이 인정됐다가 대법원에서 뒤집힌 사건을 통해, 그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건 개요 — 커브길 추락 사고, 그리고 보험사의 구상금 청구

2009년 7월, 강원도 철원의 한 지방도(편도 1차로)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오후, 운전자는 좌로 굽은 내리막 커브길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도로를 벗어났고, 차량은 도로 옆 약 24m 깊이의 계곡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동승자가 사망했습니다.

동승자 측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는, 이후 도로의 관리 주체인 강원도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습니다. 보험사가 먼저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사고에 책임이 있는 제3자에게 그 금액을 대신 청구하는 절차입니다. 보험사가 내세운 근거는 “사고가 난 도로에 가드레일(방호울타리)이 없었다”는 점 — 즉 도로 자체에 관리상의 하자가 있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단

1심 격인 서울중앙지법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근거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사고 지점은 좌로 굽은 내리막이자 도로 폭이 좁은 편도 1차로여서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러지며 반대 차로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구간이었고, 도로 옆에는 약 24m 깊이의 계곡이 있어 이탈 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컸습니다. 미끄럼방지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고, 사고 지점 인근 다른 구간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정작 추락한 지점에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토해양부령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은 비탈면 경사가 심하거나 곡선 반경이 300m 미만인 구간에는 원칙적으로 방호울타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해, 1심은 강원도가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를 다하지 않은 하자가 있었고, 이것이 사고 발생과 손해 확대의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완전무결한 안전”이 아니라 “상식적 이용을 전제로 한 상대적 안전”

대법원은 이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먼저 짚은 것은 국가배상법이 말하는 ‘영조물 설치·관리상의 하자’의 의미입니다. 도로 같은 공공시설이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사고가 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안전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이 상식적이고 질서 있게 이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상대적인 안전성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대법원이 이전부터 유지해 온 기준입니다. 그리고 이 안전성을 갖췄는지는 관리자가 재정적·인적·물적 여건 안에서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정도의 방호조치를 다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기준을 이 사건에 적용하면서, 대법원은 1심의 판단을 하나씩 반박했습니다. 사고 지점은 도로와 농로 진입로가 만나는 곳이었는데, 반대 차로(오르막)에서 정상적으로 달리던 차량이 설사 방호울타리 없는 지점으로 이탈하더라도 그 뒤는 높이 차이가 크지 않은 평지여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았습니다. 또한 좌로 굽은 내리막 도로를 정상적으로 달리는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갓길 쪽으로 미끄러지는 상황 자체가 통상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경우이고, 도로안전시설 지침이 그런 경우까지 대비해 방호울타리를 설치하라고 요구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습니다.

무엇보다 대법원이 주목한 건 이 사고의 발생 경위였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노면이 미끄러운 상태에서, 승차정원 5명인 차량에 6명이 탑승했고, 시속 60~70km로 중앙선을 침범해 추월을 시도하다 벌어진 사고였습니다. 차량 중량, 수막현상, 중앙선 침범, 과속이라는 여러 요인이 겹친 이례적인 사고였다는 것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는 자료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무리한 추월을 시도하다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도로로 미끄러지는 극단적 상황까지 대비해 방호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도로에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이 결여된 하자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원심 판결은 파기되어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내졌습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도로 하자 주장은 생각보다 입증의 문턱이 높다

실무적으로 보면, 도로 관리 하자를 이유로 한 국가배상이나 구상금 청구는 “사고 지점에 위험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위험이 상식적이고 질서 있는 통상적 이용 상황에서도 실현될 수 있는 것이었는지, 그리고 관리 주체가 처한 재정적·인적·물적 여건상 그 위험을 방지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기대 가능했는지까지 함께 입증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고가 난 지점에 가드레일이 없었다”는 사실 하나로 관리자 책임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판단이 유족이나 보험사 입장에서는 다소 야박하게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24m 낭떠러지 옆에 가드레일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는 누가 보아도 위험해 보이는데, 법원은 운전자의 과실(과속, 정원 초과, 중앙선 침범을 무릅쓴 추월 시도)이 이례적으로 겹쳤다는 이유로 관리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반대편에서 보면, 모든 도로에 상정 가능한 모든 극단적 상황까지 대비한 안전시설을 요구한다면 지자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한도 없이 늘어나고, 그 부담은 결국 다른 공공서비스의 재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이 재정적·인적·물적 제약을 판단 기준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확인/체크리스트 (실용적 행동 지침)

  1. 단독사고(중앙선 침범, 도로 이탈 등)를 겪었다면, 사고 당시 속도·탑승 인원·기상 상태 등 운전자 측 과실 요소가 사고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는지 먼저 점검합니다.
  2. 도로 결함을 이유로 지자체나 국가에 배상·구상을 청구하려면, 해당 구간이 관계 법령상 방호시설 설치 의무 구간이었는지, 같은 장소에서 유사 사고 전력이 있었는지 등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함께 확보해야 합니다.
  3. 보험사가 대위·구상권을 행사해 도로관리청에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요구하는 안전성의 기준이 “완전무결”이 아니라 “상식적 이용을 전제로 한 상대적 안전”이라는 점을 감안해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사고 경위에 과속, 정원 초과, 무리한 추월 시도 등 이례적인 요소가 여럿 겹쳐 있었다면, 도로관리자의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이해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이 글은 국가배상법 · 영조물책임 · 방호울타리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칼럼은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