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치료비, 손해배상금에서 전액 공제되는 게 맞을까?

교통사고나 사고로 다쳐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뒤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합의하는 상황은 흔합니다. 이때 “건강보험에서 이미 낸 치료비는 배상금에서 빠진다”는 것쯤은 다들 압니다. 그런데 정확히 얼마가, 어떤 순서로 빠지는지는 202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판결이 나온 뒤 몇 년에 걸쳐 이어진 후속 판례들이, 이 원칙을 기왕증이 있는 경우, 대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자동차보험의 특수한 규정과 만났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면서 세부 기준을 계속 정교화해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원칙의 출발점이 된 판결과, 이후 이어진 대표적인 후속 판례 네 건을 함께 정리합니다.

사건 개요 — 무면허 오토바이 사고와 국민건강보험

이 원칙이 처음 확립된 사건은, 16세 미성년자가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횡단보도 인접 도로를 건너던 피해자를 충격한 사고였습니다. 피해자는 척수손상으로 사지마비 상해를 입었습니다. 법원은 오토바이 운전자(당시 미성년자)와 그 부모(감독의무 위반)의 공동 책임을 인정하면서, 피해자에게도 20%의 과실이 있다고 봤습니다.

피해자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가해자 측에 대한 피해자의 치료비 손해배상채권을 대신 행사(대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공단이 대신 청구할 수 있는 금액과, 피해자 본인이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 ‘과실상계 후 공제’에서 ‘공제 후 과실상계’로

과거 — 과실상계 후 공제

1989년부터 30년 넘게, 대법원은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따라왔습니다. 전체 치료비에서 먼저 피해자의 과실 비율만큼 배상액을 깎은 다음, 거기서 공단이 부담한 보험급여비용(이하 ‘공단부담금’) 전액을 공제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에서는 공단이 피해자를 대위해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범위가 원칙적으로 공단부담금 전액이었습니다.

현재 — 공제 후 과실상계

2021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전체 치료비에서 먼저 공단부담금을 공제한 다음, 그 나머지(피해자 본인이 부담한 부분)에 과실상계를 적용하는 ‘공제 후 과실상계’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에 따라 공단이 대위할 수 있는 범위도 공단부담금 전액이 아니라, 그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됩니다.

계산 순서가 이렇게 달라지면 결과가 어떻게 바뀌는지, 판결문이 직접 제시한 예시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치료비 1,000만 원 중 공단이 600만 원을 부담하고(공단부담금), 피해자 본인이 400만 원을 부담했으며, 가해자 책임비율이 80%인 경우를 가정합니다.

  • 과거 방식(과실상계 후 공제): 전체 치료비에 가해자 책임비율을 곱한 800만 원(=1,000만 원×80%) 중에서 공단부담금 600만 원 전액을 공단이 대위합니다. 피해자는 남은 200만 원만 가해자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200만 원(=본인부담금 400만 원-받은 배상금 200만 원)을 전보받지 못한 채 손해로 떠안고, 공단은 손해가 0원입니다.
  • 현재 방식(공제 후 과실상계): 치료비 1,000만 원에서 공단부담금 600만 원을 먼저 뺀 400만 원(본인부담금과 일치)에 가해자 책임비율 80%를 곱한 320만 원이 피해자가 직접 청구할 수 있는 배상액이 됩니다. 공단은 공단부담금 600만 원 중 가해자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480만 원(=600만 원×80%)을 대위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80만 원(=본인부담금 400만 원-받은 배상금 320만 원, 본인부담금 중 피해자 자신의 과실비율(20%)에 해당하는 금액과 정확히 같습니다)만 손해로 남고, 공단은 120만 원(=공단부담금 600만 원-대위한 480만 원)을 손해로 떠안습니다.

가해자가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금액(800만 원)은 두 방식 모두 같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800만 원을 피해자와 공단이 어떻게 나눠 받는가입니다. 과거 방식은 사실상 피해자의 과실 부분까지 공단이 회수해 가는 구조였다면, 새 방식은 피해자의 과실 비율만큼만 피해자 스스로 부담하고 나머지는 보험자인 공단이 최종적으로 떠안도록 정리한 것입니다.

왜 바뀌었나 — 사회보장 제도로서의 건강보험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이 국민의 질병·부상 위험을 보험료와 국고로 마련한 재원으로 대처하는 사회보장제도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건강보험은 가입자에게 과실이 있어도(고의·중과실이 아닌 한) 보험급여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3자의 불법행위가 개입됐다는 이유만으로 공단이 피해자의 과실 부분까지 회수해 갈 수 있다고 보면, 사고가 순전히 피해자 본인 과실로 일어난 경우보다 제3자가 개입된 경우에 피해자가 오히려 더 불리해지는 불합리가 생깁니다.

이 판결은 만장일치가 아니었습니다. 대법관 1인은 반대의견에서, 기존 판례가 법 문언에 더 부합하고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용되어 온 만큼 함부로 바꿀 사안이 아니며, 보장 범위를 넓히는 것은 법원의 해석이 아니라 국회의 입법으로 할 일이라는 취지로 반대했습니다. 다수의견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보충의견에서 판례 변경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무적 보완(관련 소송의 병합 심리, 구상금 소송에서 가해자 책임비율에 대한 충실한 심리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이후 판례들 — 원칙은 어떻게 정교해졌나

기왕증이 있는 경우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2022년과 2023년 판례는 사고 발생에 피해자의 ‘과실’이 아니라 ‘기왕증'(원래 있던 질환이 손해 확대에 기여한 정도)이 경합된 경우에도 같은 ‘공제 후 [감액]’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전체 치료비에서 먼저 공단부담금을 공제한 다음, 그 나머지에 기왕증 기여도(사고로 인한 손해의 비율)를 곱하는 방식입니다.

한 사건에서는 대기 중이던 차량이 뒤에서 충격당한 사고로 기왕치료비 87,938,905원(피해자 본인부담 59,001,873원, 공단부담 28,937,032원)이 발생했는데, 법원은 기왕증 기여도를 80%로 평가했습니다(사고로 인한 손해 비율은 20%). 원심은 전체 치료비에 20%를 곱한 뒤 공단부담금 전액을 공제해 손해배상액을 0원으로 산정했지만, 대법원은 공단부담금을 먼저 공제한 나머지에 20%를 곱하고 이미 지급된 금액을 뺀 9,061,664원이 정당한 손해배상액이라고 다시 계산했습니다. 다른 사건에서도 법원은 같은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이 원칙이 과실상계뿐 아니라 기왕증 기여도가 문제 되는 모든 사안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재확인했습니다.

대위 범위는 ‘건강보험급여와 같은 성질’의 손해로 한정된다

2024년 판례는 공단이 대위할 수 있는 손해배상채권의 범위 자체가 건강보험 급여와 ‘동일한 사유’에 의한 것으로 한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가해자(또는 그 보험자)가 피해자에게 위자료, 휴업손해, 일실수익, 비급여 치료비, 향후치료비 명목으로 돈을 지급했더라도, 이는 건강보험이 커버하는 손해(기왕치료비 중 요양급여 관련 부분)와 성질이 다르므로 공단의 구상권 범위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반대로 공단도 이런 항목까지 끌어와 구상권을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해자 측 보험자가 지급한 돈 중 건강보험 급여와 실제로 겹치는 부분(예: 본인부담금에 해당하는 금액)이 있다면, 그 부분은 별도로 심리해 공제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이 판례는 항목별로 성질이 대응하는 손해에만 공제·대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자동차보험의 특수한 최소보장 규정과 만났을 때

2025년 판례는 조금 더 특수한 상황을 다룹니다.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은, 교통사고 피해자의 손해액이 과실비율을 반영해도 일정 기준(자동차보험진료수가기준에 따른 ‘진료비 해당액’)에 못 미치면, 그 진료비 해당액만큼은 피해자의 과실과 무관하게 책임보험금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단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최소보장 덕분에 원래 과실비율대로라면 못 받았을 부분까지 보험사가 책임보험금으로 지급하게 되는데, 대법원은 공단이 이 단서 규정에 따라 대위하는 경우, 원래 가해자가 부담했어야 할 손해배상액 부분은 종전과 같이 가해자 책임비율만큼만 대위할 수 있지만, 단서 규정 덕분에 증액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과실과 관계없이 전액을 대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소보장을 얹어준 부분까지, 사고와 무관한 피해자의 과실 때문에 대위가 제한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실무자의 시각에서 —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나

실무적으로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뒤 가해자와 합의하거나 소송을 진행할 때 손해배상액을 계산하는 순서입니다. 치료비에서 공단부담금을 먼저 뺀 뒤 과실상계를 하는지, 아니면 예전 방식대로 과실상계부터 한 뒤 공단부담금을 통째로 빼는지에 따라 실제로 받는 금액이 달라집니다. 앞서 본 예시처럼, 같은 사고인데도 계산 순서만 바뀌면 피해자가 떠안는 손해가 몇 배씩 차이 날 수 있습니다.

기왕증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도 챙겨야 할 부분입니다.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해 기왕증 기여도가 인정되는 사안이라면, 여전히 예전 방식(전체 치료비에 기여도를 곱한 뒤 공단부담금을 통으로 빼는 방식)으로 계산해 배상액을 낮게 제시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계산 순서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 측이 위자료나 휴업손해, 향후치료비 명목으로 이미 돈을 지급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국민건강보험 관련 배상책임까지 줄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질이 다른 손해 항목끼리는 서로 상계·공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보면, 합의서나 손해액 정산서에 각 항목이 어떤 손해(치료비인지, 위자료인지, 일실수익인지)에 대응하는지 명확히 기재해두는 것이 나중에 이런 분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확인·체크리스트

  1. 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뒤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합의하는 경우, 계산이 ‘공제 후 과실상계’ 순서(치료비에서 공단부담금을 먼저 뺀 뒤 과실상계)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합니다.
  2. 지병이나 기존 질환(기왕증)이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기왕증 기여도에 대해서도 같은 ‘공제 후’ 순서가 적용되는지 확인합니다.
  3. 상대방이 지급한 위자료·휴업손해·향후치료비 등이 건강보험 관련 치료비 배상액과 뒤섞여 계산되고 있지는 않은지 항목별로 확인합니다.
  4. 자동차사고라면,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상 진료비 최소보장 규정이 적용되는 사안인지 함께 살펴봅니다.
  5. 계산 구조가 복잡한 사안인 만큼, 구체적인 금액 산정은 변호사나 손해사정 전문가와 함께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 글은 공제후과실상계 · 과실비율 · 구상금 태그와 이어집니다. 관련 실제 사례와 칼럼은 콘텐츠가 쌓이는 대로 함께 연결해드릴 예정입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상담이 필요하시면 상단 메뉴의 ‘상담하기’를 이용해주세요.)

이 글을 쓴 사람
굿보상닷컴
손해사정법인을 거쳐 현재 법률사무소 소속 · 보험 실무 17년

네이버 지식iN에서 ‘굿보상닷컴’으로 보험 상담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험금 지급거절과 분쟁 사건을 실제 사례와 판례로 해설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청구 현장에서 쌓은 판단 기준을 나눕니다.